고요 속에서 시작되는 세계도 있다. 이 세계는 그렇지 않다. 이 세계는 한여름 밤을 가른 하나의 균열에서 시작된다 — 젖은 비단을 가르는 칼날처럼. 높은 본성의 거울 회랑에서 빛이 파편으로 쏟아졌다. 그녀의 숨을 세던 호위들은 영원히 침묵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자신이 방금 세계를 잃었음을 아직 알지 못하는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그녀 자신보다 오래되었다. 이름이 떨어지면 가문들은 눈을 내리깔았다. 이름이 불리면 칼날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름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 밤이 조용히 오기로 결심한다면. 벽이 거울이고, 그 모두가 한꺼번에 깨질 때, 무엇이 남는가?

계속 숨 쉴 것. 계속 타오를 것. 계속 걸어갈 것. 그토록 단순하고, 그토록 불가능한 일. 자신의 혈통이라는 우리 안에 홀로 남은 한 암호랑이는, 입이 가벼워지기로 결심한다. 시끄럽기로. 슬픔에 의해 고쳐지기를 거부할 만큼 고집스러워지기로. 그녀에게 답은 없다. 오직 방향이 있을 뿐 —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가지지 못할 것보다 더 많다.
이것은 한 공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단 한 소녀의 칼끝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한 세계의 연대기다 — 치유와 파멸 사이, 용서와 불꽃 사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평화와 늘 그 자리에 있었던 화염 사이.
먹은 아직 젖어 있다. 첫 붓자국이 지금 시작된다.
밤이 지난 뒤에는 위로가 오지 않았다. 거울 조각을 씻어내린 이슬과, 성문을 열어둔 채 떠난 바람이 왔을 뿐. 키라는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걸어 나갔다. 안에는 더 이상 그녀를 붙잡아줄 이가 없었으므로. 때로 한 왕국은, 한 아이가 문턱을 넘는 그 순간 시작된다.
세상은 그녀에게 답을 보내지 않았다. 동행을 보냈다. 결코 허락을 구하지 않는, 그림자와 칼날의 붉은 언니. 차와 진실을 뜨거운 채로 들이미는, 나무와 잉걸불의 엄한 어미. 명령 대신 수수께끼를 내미는 스승. 그리고 침묵 그 자체가 맹세인 듯, 그저 곁을 걷는 말 없는 승려.

허나 평화란, 숨결로 가득 찬 큰 방의 한 자루 촛불. 오래된 가문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누구도 갚으려 하지 않던 빚이 받아내려 돌아왔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 온 자리에는, 더 이상 이름이 필요 없는 무언가가 모여들었다. 마(魔)들은 멀리 있었던 적이 없었다 — 다만 세상이 그들을 보는 법을 잊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소녀, 네 명의 동행자, 그리고 어떤 지도에도 담기지 않는 물음. 스스로에게 피 흘리는 법을 가르친 세상을, 어찌 치유할 것인가? 어쩌면 칼로는 아니다. 어쩌면 노래로. 어쩌면, 침묵을 거부한 호랑이가 하는 그 무엇으로.
여기서 서장은 닫힌다. 이제 시작되는 것은 — 사가 그 자체다.
프롤로그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와 같지 않다. 지금까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 — 북쪽의 벽, 대나무 숲, 깊은 거울의 마을 — 이 키라의 발 밑의 땅이 된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숨겨야 하는 후계자가 아니다. 그 이름을 지니고, 매일 새로이 지켜내는 호랑이이다.
동료들은 가족이 된다. 그러나 오래된 가문들은 그들의 벽보다 오래 사는 기억을 가진다. 위조된 봉인을 든 사자가 찾아온다. 누구도 불을 지펴서는 안 될 밤에 다리들이 불탄다. 그리고 키라는 깨닫는다 — 희망은 선물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다시 내리는 결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왜 계속 나아가는지, 결코 잊지 말 것. 희망을 위해. 깨진 거울이 멀쩡한 거울 한 벽보다 더 많은 것을 비친다는 희망을 위해. 밤이 빼앗아 가지 못한 모든 숨결을 위해. 이 사가는 지금 시작된다 — 그리고 그것은 함께 걷기로 선택한 이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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